장애인 교육의 본질적인 구조 문제, 단순히 기술 도입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제도적·사회적 장벽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해보자.
1. 교육 기술은 있는데, 제도는 준비되지 않았다: 현장과 정책의 간극
오늘날 우리는 장애인의 교육을 돕는 다양한 기술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스크린 리더, 자폐 아동을 위한 감각 조절 인터페이스, 청각장애인을 위한 실시간 자막과 수어 인식기 등. 기술은 빠르게 발전해왔고, 비용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이 기술이 학교 현장에 잘 스며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일까? 이유는 단순하지 않지만, 핵심은 정책 격차다. 장애 학생을 위한 교육 기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교는 여전히 그것을 채택하거나 지속적으로 활용하지 못한다. 이는 단지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 설계와 실행 체계가 기술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떤 학교에서는 시각장애 학생을 위해 점자 디스플레이 도입을 신청했지만, 그 예산은 기자재 구입비가 아닌 특수교육 운영비 항목에 해당돼 예산 승인이 나지 않았다. 또는 AI 기반 학습 도구를 활용하고자 해도, 교사가 그 기술을 적용할 시간도, 연수도, 행정적 지원도 부족해 실질적인 적용은 요원해진다. 이러한 사례는 교육 기술이 교육 정책과 맞물리지 않으면 그저 쇼케이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실제로 장애 학생에게 유용한 학습 도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의 기자재 목록에는 올라가지 못하거나, 교육부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활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즉, 우리는 기술이 아닌 제도가 문제인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런 구조적 문제는 특히 지방 소규모 학교나 특수학교 이외의 통합학급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특정 기술이나 프로그램이 시범사업으로 한두 학교에만 적용된 뒤 전국적으로 확산되지 않거나, 정책 일관성 없이 단기적 사업으로만 운영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로 인해 지역 간, 학교 간 격차는 더 심화된다. 장애인 교육의 기술 격차를 말하기 전에, 우리는 ‘정책이 기술을 활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그것을 누가 어떻게, 어떤 철학과 책임으로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제도적 토대 없이는 장애인 교육에서 실질적인 변화는 어렵다.
2. 접근 가능한 교육이 아니라, 접근할 수 없는 행정이 문제다
장애인 교육에서 AI, 디지털 기기, 온라인 플랫폼 등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강력한 도구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학습이 보편화되면서, 교육 기술의 접근성은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그러나 정작 장애 아동과 그 가족은 이러한 기술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행정 시스템의 복잡성과 제도의 불일치에서 비롯된다. 장애 아동의 부모가 자녀의 교육 보조기기나 디지털 학습 도구를 지원받기 위해서는 복잡한 신청 절차, 까다로운 심사 기준, 여러 기관을 거쳐야 하는 행정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이 과정은 일반 가정에게도 벅차지만, 특히 정보 접근이 제한된 저소득층, 이중 언어 사용 가정, 다문화 가정에게는 거의 넘을 수 없는 벽이 된다.
예를 들어, 특수교육 관련 기기 지원을 신청하려면 소득 증명, 장애 진단서, 학교의 추천서, 전문가 자문 등이 요구되며, 몇 개월의 대기 시간이 기본이다. 게다가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기준이 불분명한 정책들도 문제다. 같은 장애 등급이어도, 거주 지역이나 학교, 담당 공무원의 해석에 따라 지원 여부가 달라지기도 한다. 이는 장애 학생과 가족에게 행정은 일관된 지원이 아닌, 불확실성과 편차가 큰 장벽으로 인식되게 만든다.
또한 학교 내부에서도 교사가 새로운 교육 기술을 도입하고 활용하는 데 필요한 재량과 시간, 연수 기회가 제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행정은 학교에 특정 기술을 도입하라고 권고하지만, 정작 그에 대한 교육과 책임은 개인 교사에게 전가되는 구조다.
결과적으로 교사는 새로운 기기를 ‘거추장스러운 업무 증가’로 느끼게 되고, 장애 아동은 기대했던 학습 도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즉, 기술적 접근성은 확보되었더라도 제도적·행정적 접근성은 여전히 매우 낮다. 우리는 "누구나 디지털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말 이전에, "누가 그 디지털 환경에 실제로 도달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 먼저다. 기술 이전에 행정, 시스템 이전에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장애인 교육의 진짜 장벽은 기술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복잡하고 단절된 제도 구조다.
3. 기술 이전에 철학: 포용을 전제로 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장애인 교육에서 기술의 가능성을 논할 때, 우리는 종종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 있다’는 과도한 낙관주의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는 기술 도입이 아니라, 정책의 철학적 기반 변화에서 시작된다. 즉, 장애 학생을 어떤 존재로 바라보는가에 따라 그 정책의 방향과 깊이가 완전히 달라진다.
현행 교육 정책은 종종 장애 학생을 ‘지원받는 대상’, ‘특수한 관리가 필요한 집단’으로 구분한다. 이는 필요 기반 접근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장애를 결핍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정상’ 교육에서 벗어난 별도 처리 대상으로 본다는 점에서 여전히 배제적이다. 이 같은 인식은 기술 도입마저 시범적, 보조적, 한시적 프로젝트로 제한하는 원인이 된다.
예컨대 AI 기반 학습 도구를 장애 학생에게 적용할 때도, 그것이 일반 교육에 통합되어야 한다는 인식보다는, ‘특수교육 전용 보조기기’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접근되곤 한다. 하지만 진정한 포용은 기술을 ‘특수화’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습자가 함께 쓸 수 있도록 설계하고, 필요한 조정만 개별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 설계 초기 단계부터 장애인의 요구가 반영되고, 정책 설계에서도 ‘통합’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러한 철학적 전환은 정책 언어와 실행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단지 예산을 배정하고 기자재를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학교 문화, 교사 연수, 학부모 지원, 지역사회의 인식 개선까지 포괄하는 통합 정책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장애는 불편이 아니라 다양성이다"라는 철학이 놓여야 한다.
궁극적으로 기술은 도구에 불과하다. 장애인 교육에서 진짜 필요한 건, 누구나 학습할 권리가 있고, 그 권리를 실현할 수 있도록 환경을 바꾸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정책이 해야 할 일이며, 기술이 아닌 정책의 방향성과 가치관이 장애 아동의 미래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우리는 더 많은 기기를 개발하기 이전에, 더 나은 질문을 던지는 정책 철학을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