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빠르게 교육 현장에 들어오고 있지만, 그 속에서 인간 교사의 정서적 역할이 갖는 중요성을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 정답보다 위로가 먼저인 순간들: 인간 교사가 할 수 있는 일
교실에서 벌어지는 모든 학습이 지식의 전수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수많은 배움의 순간들은 ‘정서적 연결’ 위에서 이루어진다. 한 아이가 문제를 틀렸을 때, 시험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을 때, 혹은 발표 도중 친구들의 웃음소리에 주눅이 들었을 때, 그 순간에 필요한 건 정답이 아니라 위로와 공감, 그리고 기다림이다. 이런 장면은 AI가 놓치기 쉬운, 그러나 인간 교사는 매일같이 마주하는 교육의 진짜 얼굴이다.
가령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수학 문제를 계속 틀린다고 해보자. AI 튜터는 그 아이의 오답 패턴을 분석하고, 반복 학습을 제안하며, 진도를 맞춤 조정할 것이다. 이는 분명 기술적으로 정교한 피드백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아이가 “나는 바보인가 봐요”, “난 수학을 못 해요”라고 말하는 순간에 시작된다. 이때 필요한 것은 반복 학습이 아니라, “그럴 수 있어. 나도 어릴 때 그랬단다”, “틀려도 괜찮아. 너는 이미 잘하고 있어”라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 교사가 지닌 정서적 중재의 힘이다.
특히 어린 학습자일수록, 자신의 실수를 자신감 상실로 연결시키기 쉽다. 단지 문제를 못 푼 것이 아니라, ‘나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으로 연결시켜 버린다. 교사는 이처럼 지식이 아닌 자아 감각에 영향을 주는 순간들을 포착하고, 감정을 다독이며, 아이가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심리적 기반을 제공한다. 때로는 말 한마디가 아닌, 아이 옆에 조용히 앉아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청소년기에는 더욱 복잡한 정서가 얽힌다. 입시 압박, 또래와의 비교, 교사와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단순한 학습 효율성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어떤 학생은 질문조차 못 하고, 어떤 학생은 일부러 대충 푸는 방식으로 자존심을 지키기도 한다. 인간 교사는 이런 보이지 않는 저항의 신호를 감지하고, 그 원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어떤 때는 한참을 기다린 끝에, 학생이 조심스럽게 “사실은 요즘 집안이 좀 힘들어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이렇듯 심리적 안전지대를 만드는 것이 교육의 출발점일 수 있다. AI는 지금까지의 데이터만을 바탕으로 행동하지만, 인간 교사는 현재의 눈빛 하나와 과거의 기억, 미래의 가능성까지 함께 고려해 학생을 바라본다. 이는 기술적으로 수치화할 수 없는 영역이다. 더구나 인간 교사는 정답보다 ‘함께 고민하자’, ‘답을 찾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학생이 스스로를 신뢰하게 만들고, 실패를 성찰의 기회로 전환시키는 기반이 된다. 또한 인간 교사의 말과 행동은 학습의 분위기 자체를 형성한다. 실수에 관대한 교실, 도전을 칭찬하는 분위기, 협력과 토론이 존중받는 수업은 모두 교사의 정서적 리더십에서 비롯된다. 이런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점수가 아닌 성장을 중심으로 학습을 경험하게 된다.
그 결과 지식은 머리에만 남는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로 이어진다. 요컨대, 인간 교사는 교육의 과정에서 ‘정답’을 가르치는 사람이라기보다, 실수해도 괜찮은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사람이다. 그 위로와 기다림, 격려의 순간들이 쌓여 학습자는 결국 더 강한 동기와 자율성을 갖춘 배움의 주체가 된다. AI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이러한 감정의 결은 아직 인간만이 짚어낼 수 있는 고유한 능력이다. 교육의 핵심이 지식 이전만이 아니라 인간 성장이라면, 교사의 정서적 역할은 그 어떤 기술보다도 오래도록 중요할 것이다.
2. 관계의 힘: 신뢰와 소속감을 형성하는 교사의 존재감
우리는 교육을 종종 ‘개인’과 ‘지식’ 사이의 문제로만 생각하곤 한다. 학생이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느냐, 어떤 전략으로 학습하느냐, 얼마나 꾸준히 반복하느냐에 따라 성과가 결정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로 학습의 지속성과 질을 결정짓는 핵심 요인 중 하나는 관계성이다. 그중에서도 교사와 학생 사이에 형성되는 신뢰는 단순한 지식 전달 이상의 교육적 의미를 갖는다.
인간 교사는 단지 수업을 설명하는 존재가 아니다. 학생의 이름을 부르고, 지난 시간에 했던 이야기를 기억해주고, 숙제를 하지 못한 이유를 묻는 작은 관심에서부터 심리적 소속감이 형성된다. 이러한 관계의 경험은 "나는 이 교실에 속해 있다", "이 선생님은 나를 진심으로 봐준다"는 감정으로 이어지고, 이는 학습자가 어려움을 겪더라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정서적 기반이 된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성취를 경험하는 전환점에는 ‘특정 교사의 존재’가 있는 경우가 많다. 무기력하던 아이가 어느 날 공부를 시작한 계기가, 바로 자신을 믿어준 담임 선생님의 한 마디였다는 이야기는 교육 현장에서 흔히 들을 수 있다. 한편, AI는 분석과 피드백에 있어 뛰어난 능력을 보이지만, 관계를 형성하는 감정의 언어는 여전히 서툴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유저 맞춤화는 가능하지만, 누군가가 "요즘 무슨 일이 있어 보여요"라고 말하는 인간적인 울림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또한 관계는 단지 동기를 부여하는 도구를 넘어, 학습의 안정성과 자유로움을 확보하는 핵심 요소다. 학생은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낄 때에야 비로소 도전하고, 질문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시도할 수 있다. 인간 교사의 따뜻한 분위기 조성, 정서적 개입, 실수에 대한 유연한 반응은 교실을 정서적 안전지대로 만들고, 학습자의 ‘심리적 여유’를 확보해준다. 게다가 관계는 교사 개인과 학습자 사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교사는 교실 전체의 관계망을 설계하고, 조율하며, 서로 다른 학습자들이 협력하고 공존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든다. 이는 AI가 현재로선 수행하기 어려운, 사회적 조율자로서의 역할이다. 친구를 배려하는 법, 다른 생각을 존중하는 법, 공동 프로젝트에서 협업하는 기술은 관계 속에서만 배울 수 있고, 그 환경을 만드는 주체는 바로 인간 교사다.
결국 교육은 사람 사이의 연결을 통해 이루어진다. AI는 ‘개별화 학습’에 강하지만, 사람 대 사람 사이에서 형성되는 의미 있는 배움은 인간 교사만이 이끌어낼 수 있다. 아이들은 지식보다 먼저 사람을 통해 배우고, 관계 안에서 성장하며, 신뢰 속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경험은 평생 잊히지 않는 배움으로 남는다.
3. 감정, 윤리, 그리고 배움의 방향성: 인간 교사의 교육 철학
AI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학생에게 정확하고 빠른 피드백을 제공하며, 실수를 분석하고, 최적화된 문제를 추천하고 있다. 이는 교육의 접근성과 효율성을 크게 향상시킨다. 그러나 AI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절대로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왜 이걸 배워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능력, 즉 교육의 철학을 형성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인간 교사의 역할이다.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 이상이다. 어떤 지식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누구에게, 왜 가르쳐야 하는지는 교육 철학의 문제다. 교사는 교과서를 넘어서, 학생이 살아가는 현실과 삶의 고민을 함께 바라보며, 지식의 ‘의미’를 구성해낸다. 예를 들어, 환경 문제를 다루는 수업에서 교사는 단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학생에게 묻는다. “우리가 쓰는 이 전기와 편리함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고통이 될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본 적 있니?” 이 질문은 단지 정보를 넘어서, 세상을 이해하고 책임지는 태도를 길러주는 철학적 개입이다.
AI는 지식의 ‘무게’를 계산할 수 있지만, 지식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파장을 읽어내지는 못한다. 인간 교사는 지식을 통해 삶을 돌아보고, 사회를 성찰하고, 자신을 확장하도록 돕는다. 특히 윤리적 판단이나 가치 판단이 필요한 영역에서 교사의 안내는 필수적이다. 생명윤리, AI 윤리, 기후 위기, 젠더 이슈와 같은 복잡한 주제는 단순히 정보를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와 도덕적 상상력이 요구되는 영역이다.
또한 인간 교사는 학생 개인의 상황과 삶의 맥락을 이해한 뒤, 그에 맞는 배움의 방향을 함께 설계하는 인생의 조력자이기도 하다.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에게, 단지 ‘어떤 직업이 유망하다’는 데이터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너는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해 보여?”라고 질문하고, 학생이 스스로 답을 찾아가도록 돕는다. 이 과정은 AI가 제공하는 진로 큐레이션 시스템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것은 통계가 아니라 사람의 내면을 향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인간 교사는 실패와 혼란의 순간에도 함께 있어주는 존재다. 학습자는 종종 좌절하고, 혼란에 빠지며, 정체성의 벽 앞에 멈춘다. 그때 교사는 말한다. “지금 너의 감정은 당연해. 나는 네 편이야.” 이 한마디는 어떤 피드백 알고리즘보다 더 큰 울림을 준다. 교사는 감정을 해석하고, 때로는 자신도 함께 혼란스러워하면서 그 과정을 견뎌낸다. 그리고 이 감정적 동행은 배움의 방향성을 흔들리지 않게 지탱해준다. 따라서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교육의 최종적인 방향 설정과 그 의미 구성은 여전히 인간 교사의 손 안에 있다. 교육은 기술이 주도하는 산업이 아니라, 사람이 성장하는 관계의 예술이다. 그리고 이 예술의 중심에는, 질문하고 경청하며, 때로는 함께 길을 잃는 교사라는 인간이 존재한다.